다시 J에게.

기껏 한 시간짜리 혹은 한 시간 반짜리 함께 한 산책으로 주말 내내 기분이 좋아서 하하하 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또 왜 이러나 싶어 가슴이 철렁. 쓸데없이 마음을 풀어헤치는것이 인터넷 화장품 쇼핑보다 더 나쁜 요즘이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알겠구나.

같이 추운 길을 걸어가서 맥도날드 커피를 사고, 컵을 든 손이 추워 네 장갑을 한짝씩 나눠끼고, 별 것 아닌 말에도 둘이 깔깔 대면서 걸어온 그 길이, 내게는 데자뷰니까. 지난 번 산책의 정확한 복습. 그리고 이번엔 실수하지 않았어 하는 안도감.

네가 콕 집어 불편하진 않지만, 나는 너한테 쓸데없이 "뭐하니? 심심해서 전화했어"하고 전화하라면 좀 망설여야겠다. 너와 마주치는 일은 모두 다 우연이어야 하고 우연이 아닐 경우에는 너의 요청에 의해서여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주저. 항상 가라앉아 있는 네가 나와 이야기하면서 고양이 주름을 하고 깔깔대고 웃을 때 드는 이상한 안도감. 안전하지 못한 끈이라는 걸 알아 끌어당기지 못하고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못해서 애매하게 힘을 빼고 있는 의도된 느슨함. 네가 쥐고 있는 끈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비슷한 거 아닐까. 인연이 아닌 듯도 싶은데, 이러다 그냥저냥 흐지부지 그런 친구 있었지 될 듯도 싶은데, 여기서 돌아가면 다시는 못 볼 것도 같은데, 왜 둘 다 이 끈을 못 놓고 있는지. 참 이상하다.

by 모리슨 | 2009/11/14 16:34 | 숨소리 | 트랙백 | 덧글(0)
J에게.

아무려면 어떻겠느냐.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 재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
이제 나는 내 짐을 지고 갈 길을 가야겠다.

타자의 호의 앞에 고개를 젓는 것이 너의 짐이라면, 고개 젓는 네 앞에서 가슴을 치고 자신을 탓하는 것이 나의 짐일 것이다. 어찌하겠느냐, 적당히 지고 가다 묻더라도 당장은 등에 져야 할 짐이다. 왜 그랬느냐 묻지 않을 것이다. 벗어나고 잊으면 참으로 좋을 것이나 욕심부리지 않을 것이다. 가슴이 내려앉고 걸음이 되돌려진다면 그것도 내가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 댓가. 몇번을 다시 돌려준대도, 나는 너와 소통하는 법을 알지 못할 것이므로 이제 그만 되었다. 세상에는 배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에 대한 상처는 한동안 스스로 깊어지기 마련이라, 나는 너를 이곳에 묻고 가지 못할 것이다. 기억날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고 묻을 자리를 찾아 헤맬 것이나 결국은 선 채로 고단하게 잠들것이다. 괜찮아. 익숙해지지 않은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도 없는 법. 어디 이번 한 번 뿐이겠니. 평생 지고 온 짐이라 잠시 잊었던 것 뿐.

사랑은 생명을 가진 것 사이에서라면 언제든 어떻게든 생기는 것이지만, 팔다리를 꺾어 꽃병에 꽂는 사랑이 질병에 가깝듯 손바닥을 펴고 온 허공을 쥐었노라 하는 사랑도 병이다. 손바닥을 펴고 살면 잃는 것이야 없겠지마는 나는 잃고 깨질지언정 그리 살 수 없는 사람인지라 너를 겁먹게 했는지도 모르겠구나. 펴진 손바닥에도 때로 온기가 돈다는 것을 너에게서 배웠다만 나는 끓고, 넘치고, 데이며 살아온 사람이란다.

이제는 다 그만 되었다.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기에 나는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어. 늙어빠진 지구처럼 나도 나의 궤도가 있단다. 돌아가야지. 너는 너의 잘 짜여진 삶으로, 나는 성기고 거칠지만 가진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나의 삶으로.

잘, 가거라. 

by 모리슨 | 2009/10/20 09:03 | 숨소리 | 트랙백 | 덧글(0)
Goodbye, Ruby Tuesday.
신재에게

오늘은 펄잼의 얼라이브. 너도 이 곡을 들으면 그 곳 생각을 하는지. 나는 기타 인트로가 나오는 그 순간부터 에디 베더의 얼굴이 나오는 좌우 대칭 화면을 그린다. 머리를 약간 흔들며 취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그의 얼굴도 보고, 그가 앉아서 노래하는 등받이 없는 의자도 본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그의 곱슬머리와 실제로 있는지 내 기억 속에만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눈 밑의 점도 본다. 그리고...테이블 밑의 네 발목도 본다. 넌 항상 잘못 꺾어진 인형 다리처럼 묘한 각도로 발목을 꺾고 앉아있었지. 숨이 짧은 담배를 피우며 신경질적으로 재떨이를 건드리던 너의 길다란 손가락과 배가 아프도록 깔깔 웃을 때마다 활짝 펴지곤 하던 네 손바닥, 균형이 맞지 않아 삐걱거리던 테이블들과 세상 물정 모르던 주인 아저씨의 착한 눈도 이제와 다시 본다.

다시 Once. 오늘 아마존에 들어갔다가 펄잼의 베스트 앨범을 샀다. 여기 올 때 CD-Rom 드라이브가 없는 랩탑을 가져온 탓에 mp3 앨범으로 다운받아 듣는 것이 아쉽구나. 그래도 에디 베더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내가 G N' R로 시작해서 핑크 플로이드와 엘라 피츠제랄드까지 차곡차곡 밟아가던 음악의 정석도 성림과 함께 끝이 났지. 그러나 여전히, 할 일이 많지 않은 아침에는 커피와 함께 Velvet Underground의 Sunday morning을, 길을 잃었을 때는 주저 앉아 우는 대신 Janis Joplin과 The Doors, 일어날 힘이 필요할 때는 ABBA를, 기분이 엉망일 땐 Pantera와 Metallica를, 와인을 한 잔 마실 땐 Ella Fitzgerald를 들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다른 것들도 물론 그렇지만 Sunday morning은 LP로 들을 때 정말 제 맛이 난다는 것도. 이 곡만은 정말 차가운 CD에 혹은 형체없는 mp3에 적응이 안 된다.

One more cup of coffee. 참 많은 날들이 지났구나. 산짐승이라도 만난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강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지. 차곡차곡 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나름대로 사막과 사막 아닌 곳을 오가는 재주도 터득했고, 과거를 원망하며 징징대지 않는 법도 배웠다. 머리 풀고 물 속에 가라앉듯 끝없이 침잠해 바닥을 치는 순간도 많았지만 결국엔 붙잡을 것 없이도 살아나왔어. 너는 어땠을까. 넌 항상 내게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을 깔깔 웃으며 떠다니는 행성이었으니 그렇게 정처없이 살아왔을까. 아니면 나처럼 서투르게 세상에 발붙이고 어쩔 줄 모르며 살아가고 있을까.

Kashmir. 내게 이 곡은 성림이 아니라 진홍가위의 작업실이다. 유화 물감이 여기 저기 묻은 진홍가위의 오래된 작업복 겸 외출복, 벽에 가득 들어찬 LP들,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여 또 하나의 벽을 이룬 술병들, 때묻은 매트리스 밑 동전들, 한쪽 벽에는 진홍가위의 아홉가지 얼굴, 다른 쪽 벽에는 그가 그린 유화들. 국방색 카메라 가방에 꽂혀있던 레닌의 서적. 여기서부터가 너와 공유하지 못한 13년이구나. 공유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어서 네가 언젠가 나의 지구와 만나더라도 나는 그저 젖은 눈으로 웃으면서 손이나 흔들어야겠다. 그래도 나는 안다. 네가 0.1초만에 13년 아니라 130년이라도 넘어 내 손을 잡아줄 것이라는 걸. 열다섯살 그 때처럼 허리를 꺾고 깔깔 웃으며. "그딴 건 아무 것도 아냐. 우린 비틀린 사람들이잖아."
by 모리슨 | 2009/10/16 10:06 | 숨소리 | 트랙백 | 덧글(0)
詩作 메모 - 기형도.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눈이 쏟아질 듯 하다. (1988. 11)


새 공책을 사면 습관처럼 첫 페이지나 앞표지 안쪽에 기형도의 이 짧은 글을 붉은 펜으로 적어넣곤 했다. 그의 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이의 집 사정을 훤히 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가서 안 오시는 엄마와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진 아버지와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을 입고 공장에 다니는 누이들과 찬밥처럼 방에 담겨 엎드린 채 훌쩍대는 그를 보면 목이 메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각자 다른 이유로 서러웠던 어린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 다음 차례인 것이다. 삼촌방 차가운 장판 바닥에 앉아서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을 읽던 나의 시린 발. 삼촌 침대에 누워서 오랫동안 바라보면 이리저리 겹쳐보이던 하얀색 오돌토돌한 벽지의 무늬. 나는 왜 그 추운 방에서 그리도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그 때 동생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제대로 기억해낼 수 없는 그 몇 년간이 내게는 가장 추운 기억이다. 너무 무섭고 추워서 생각만해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어린 아이처럼 배가 아파온다.
by 모리슨 | 2009/10/07 12:51 | 책조각 | 트랙백 | 덧글(0)
내 이렇게 깊이 병든 까닭은.

신재에게.

이렇게 이름을 불러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들이 모두 너인지. 너도 나처럼 1년에 한 살씩 꼬박꼬박 나이를 먹어가며 살아왔는지. 우리가 그토록 소망했던 어른이 되었는데, 인생의 서러움과 고통은 청춘과 함께 지나가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도 느끼고 있는지. 우리가 함께 그랬듯 여전히 많은 것들을 조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한국을 떠나 잠시 미국의 황무지에 와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날선 고통도 이제 많이 무디어지고 신체가 적응할 수 있는 것에는 모두 적응한 듯 하다. 다만 나의 마음은 깊이 병들었구나. 어제는 문득 황동규와 마종기, 기형도, 최승자, 윤택수를 생각했다. 이 정도면 나의 병증을 너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지. 혹은 조플린과 제플린, 도어즈, 핑크 플로이드, 밥 딜런. 이 모든 것들이 너와 소통할 수 있는 기호라는 것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른이 되고 나면, 책으로 침잠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귀를 막지 않아도 살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인문학적 치료가 절실히 필요하구나. 문지사의 얇고 긴 시집들과 최인훈 전집이면 보름은 살아지겠다. 화도진 도서관에 있던 얇은 표지의 전집이면 더 좋겠다. 새로 나온 하드 커버는 내게 너무 버겁더구나. 데리다나 라캉도 좋고, 마르케스는 더 좋겠다. 그런데 나는, 윤택수가 너무나 그립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친구들 손에 나온 그 책들 말고, 새책소식에 있던 그 두 페이지, 네 페이지짜리 그 글들이 너무나 그립다. 빨치산 국화도 다시 읽고 싶고, 원양어선에 타고 있을 때 들었던 아버지의 부고 일화도 다시 읽고 싶다. 이 모든 것들이 여기선 구할 수 없는 내 치료약들의 처방전이다.

사람들이 나이 먹음을 한탄하는 것은 꼭 최후의 장면이 두려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루키가 했던 말처럼, 달성해야 할 것을 알알이 달성하지 못하고 지나침을 한탄하는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되는 것이 곧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혹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아는 것이 꼭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배운다. 나는 아직도 일곱살이다. 종이 인형을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할 지 몰라서 차곡차곡 오려두기만 하는, 아니, 종이 인형하고도 어찌 소통해야 할 지 모르는 꼬마 아이다. 내가 상자 속에 넣고 나중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더구나.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일이 쉬웠다. 내가 서툴어도 얼마든지 다시 시도할 수 있고, 끝없이 기다려주고, 성급하게 굴어도 탓하지 않는 세계가 그 곳에 있었다. 그 세계를 공유할 네가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세상과도 소통하고 있다고 착각했었지. 지금 돌아보니 그것은 세상이 아니었구나. 널 내 세계로 끌어들인 나 자신이었구나.

내 이렇게 깊이 병든 까닭은, 한번도 남에게 내 상처를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멋대로 진단하고 치료한 상처들이 이제와 내출혈로 아우성치는구나. 이럴 때 눈물은 가장 값싸고 편리한 치료약이겠지.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눈물 속의 독조차 삼키지 못하니 다시 발길을 돌려 사막으로 가야겠다. 독한 햇살과 뜨거운 모래뿐이라도 그 것이 온전히 내 것인 것을.

by 모리슨 | 2009/10/07 01:33 | 숨소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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